나 스스로에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잊지않기 위해 끊임없이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끝없는 자기세뇌의 번복이었다.
365일 이상의 자기세뇌가 30일도 채 되지않아 무너졌었다.
사람 감정 앞에선 역시, 나도, 그냥.. 할 말이 없었다. 무너짐 속에선 미래의 행복함이 웅크려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잊지않기 위해 끊임없이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끝없는 자기세뇌의 번복이었다.
365일 이상의 자기세뇌가 30일도 채 되지않아 무너졌었다.
사람 감정 앞에선 역시, 나도, 그냥.. 할 말이 없었다. 무너짐 속에선 미래의 행복함이 웅크려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많은 글쓰기가 그런 식이다.
맞춤법은 시간이 가면 정확해지지만,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단어들을 배열하는 데는 꽤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 쓴 이야기는 보통 사건의 거죽만 훑고 간다. 석양을 본 뒤, 나중에 일기를 쓸 때는 적당한 것을 더듬더듬 찾아보다가 그냥 ‘아름다웠다’고만 적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글로 고정해놓을 수가 없어 곧 잊고 만다.
우리는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붙들어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디에 갔고 무엇을 보았는지 목록을 작성한다. 그러나 다 적고 펜을 내려놓을 때면 우리가 묘사하지 못한 것, 덧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라져버린 것이 하루의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부족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갈망하면서 속으로
<만일 그걸 가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될 거야>
라는 말을 하지만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갈망하는 물건이 손에 들어오고 나면, 그것은 매력을 잃기 시작한다.
다른 욕망들이 고개를 들고, 다른 부족한 것들이 느껴지고, 우리는 어느샌가 조금씩 조금씩 원위치로 되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동물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p.s
그날그날을 순간 속에서 살아가며 주변의 일들에 골몰했더라면,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염려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면했을텐데.
fall in love for the first time.
근대 세속 사회를 바라보는 한 영향력있는 입장에 따르면 ’남들처럼’ 되는 것만큼 창피한 운명은 없다. ’남들‘이란 평범한 사람들과 순응적인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과 교외에 사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나는 그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그는 여자에게서 뭘 기대할까?
나는 어떤 취향과 지향에 내 행동을 맞추어야 할까?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아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핵심적 기준이라고 한다면, 나는 유혹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 윤리 시험에서 낙제하고 말았다.
유혹은 나를 둘로 갈라놓았다. 진짜 자아와 가짜 자아로.
고양이는 털가죽으로 싸인 낱말이다. 낱말들이 그렇듯이 고양이들은 호락호락 순치되는 법이 없이 인간의 주위를 배회한다. 기차를 타기 전에 고양이를 바구니에 담는 것은 기억 속에서 정확한 낱말을 포착하여 백지에 자리 잡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낱말과 고양이는 둘다 포착하기 어려운 종족에 속한다.